내가 선호하는 인간상은 자기 분야에서 성공한 최고의 실력자일까. 그래서 똑똑하거나 능력있는 사람이 아닐까.
곰곰히 생각해보니 그것은 내가 좋아하는 인간상이 아니였다.
내가 좋아하는 스포츠 선수, 기업인, 연기자, 예술가 등은 그들이 그 업계에서 꼭 최고의 실력을 갖춘 것은 아니다.
예를 들어 나는 90년대 초반 NBA 농구를 보며 당대 최고의 스타인 마이클 조단 보다는 찰스 바클리를 좋아했기 때문이다. 그럼 나는 그를 왜 선망했을까. 또 한번 곰곰히 생각해봤다.
답은 나오지 않았다. 그리고 설령 내가 왜 찰스 바클리라는 선수를 선망하는지, 그 이유를 파악했다고 해도 그것이 내가 독립운동가인 김구 선생님이나 디자인의 하라 켄야, 힙합계의 Roots의 음악을 선호하는 이유 그리고 페인터인 파울 클레_Paul Klee의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와는 다르다.
그러나 그러한 여러 산업에서 내가 인정하는 인간상들의 최대 공약수를 구한다고 했을 때 떠오르는 것은 크게 2가지 측면이다.
1. 비전과 관련해서, 자기 비전이 존재하며 그 비전이 단순히 자신이 잘 먹고 잘 살기 위함이라기 보다는 세상과 환경을 생각하는 분위기가 존재한다는 점이다.
2. 더불어 그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진심과 성실을 다한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.
요약하면 비전이 있으며 그 비전이 세상을 향해있는 것 그리고 그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진심과 성실을 다한 삶을 살았다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. 이것은 내가 좋아하는 인간상의 전형이지만, 동시에 닮고 싶은 인간상도 될 수 있을 것.
그리고 당연히 세상에 내가 되고 싶은 인간상을 구현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. 전 세계 60억 인구 전체가 서로 다 다른 것이 현실이고 사실이며 그 다양성이 인간 존재의 본질이니. 그러니 너무 편협하게 생각하지는 말자.
그리고 나는 향후 훌륭한 기업가가 되고 싶지만 내가 닮고 싶은 사람이 딱히, 바로 떠오르지 않는 건 아마도 기업이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본질이 되어버린 사회상의 반영일까.